아버지 권유로 21세때 6만원 첫 기부
‘기부’란 하면 할수록 커진다는말 공감
좋은 일 한다며 골프팬들이 공짜 밥도
올해 2승 기분 최고…내년 한단계 더 성장
달걀 골퍼? 비거리 줄어 다시 먹어야겠어요
6만원으로 시작해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기부자). 21살의 나이로 처음 기부를 시작했던 프로골퍼 김해림(27·롯데)은 어느덧 기부전도사가 됐다. 매년 상금의 10%를 나눔을 실천하는데 사용하고 있으며,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팬들은 그런 김해림을 ‘기부천사’라고 부른다.
따뜻한 마음 덕분일까.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도 함께 누렸다. 프로 데뷔 9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우승의 꿈을 두 번이나 경험하면서 최고의 해를 보냈다.
시즌을 끝내고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해림은 “내년 더 많이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우승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세상과의 약속이다.
-시즌이 끝났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
“시즌이 끝나니까 더 정신이 없다. 한 분 한 분 도움을 주셨던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등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그래도 올해는 기분이 좋다. 2승을 한 덕분인 것 같다.”
-우승하고 달라진 점은?
“신기하게도 많은 분들이 알아보신다. 한번은 식당에 갔는데 ‘김해림 프로 아니냐’며 반가워하시는 분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친구니까 나도 베풀고 싶다’며 밥값을 내주셨다.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했다.”
-첫 우승 때 기분은 어땠나?
“그날이 마침 어버이날이었다. 시상식 때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우승했을 때보다 더 감정이 벅차올랐다. 그 짧은 순간에 그동안 아빠와 함께 훈련하며 고생했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런 날이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우승이 쉽지 않았는데?
“1번홀에서 보기를 하면서 시작부터 위기를 맞았다. 실망스러웠지만 오히려 그게 약이 됐던 것 같다. 사실 그 전에는 경기를 하면서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마음을 편하게 먹자’고 억지로 주문을 외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먹을 때마다 더 부담이 됐다. 이날은 달랐다. 보기를 하고 나서 ‘될 때로 되라’는 식이었다. 그 후 긴장이 조금씩 풀려갔고 안정이 됐다. 후반 들어서는 2위와 2∼3타 차까지 벌어지면서 여유가 생겼다.”
김해림. 사진제공|KLPGA
-우승하기 전, 2위를 몇 번이나 했나?
“많이 했다. 제주삼다수마스터스에서는 연장전 끝에 2위(2014년)를 했고, 작년 박세리인비테이셔널과 KB금융스타챔피언십, 그 전에 서울경제여자오픈에서도 2위를 했다. 아마 그런 상황을 반복해서 경험하다보니 조금씩 우승에 가까워졌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2위만 하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첫 우승보다 두 번째 우승이 더 어렵다고 하던데?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유독 첫 우승과 2승을 한꺼번에 이룬 선수가 많았다. 장수연도 그랬고, 배선우도 그랬다. 그 선수들을 보면서 나 역시 두 번째 우승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다 5개월 만인 10월 KB금융스타챔피언십에서 다시 기회가 왔다. 박성현, 이미향 등과 우승 경쟁을 펼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첫 우승 때와는 달리 크게 긴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캐디를 하신 지유진 코치께서 더 긴장하는 듯 했다. 그러다 정희원과 연장전을 치르는 상황이 왔다. 자신이 있었고 우승에 성공했다. 한결 여유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달걀골퍼’라는 별명은 마음에 드나?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달걀골퍼’라는 말을 통해 내 이름을 알리게 됐기에 나쁘게 들리지 않는다. 요즘도 인터뷰 때마다 ‘달걀을 드세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고 있는데 다시 먹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김해림은 2013년 거리 증가를 위해 일부러 체중을 늘리게 됐고, 당시 매일 삶은 달걀을 한 판씩 먹었다). 요즘 조금씩 거리가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올 겨울에는 거리를 늘릴 계획인데, 아마도 달걀을 다시 먹어야 할 것 같다.”
-기부는 언제부터 하게 됐나?
“2007년 프로가 되면서 처음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게 됐다. 그 때 아버지께서 ‘네가 번 돈이니까 좋은 일에 써보는 게 어떠냐’며 기부를 권하셨다. 처음엔 어색했다. 전화를 걸어 기부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아마 6만원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기부는 조금씩 커졌고,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 팬클럽 회원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기부란 하면 할수록 더 커진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김해림에게 기부란 어떤 의미인가?
“처음에는 단순하게 돈만 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기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직접 참여하면서 한분이라도 더 챙겨줄 때 의미가 컸다. 기부가 운명이 된 것 같다.”
-10억 원 기부를 목표로 내세웠는데?
“기부를 하다보니 골프를 더 열심히 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목표가 10억원을 채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더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고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해야 할 것 같다. 목표를 꼭 이루고 싶다.”(김해림은 올해 첫 우승상금과 전체 상금의 10%, 그리고 팬클럽 회원과 함께 모금한 성금 등 모두 1억6000만원을 기부했다.)
-늦게 골프를 시작했는데, 어떻게 골프선수가 됐나?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운동이 하고 싶었고 아버지에게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골프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누구처럼 아버지가 골프를 좋아하셨던 것도 아니다. 단지 개인운동이라는 점에서 골프를 하게 됐다. 지금 보면 굉장히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키가 크지 않아서 농구를 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골프 하길 잘한 것 같다.”
김해림. 사진제공|KLPGA
-골프인생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은?
“아버지와 지유진 코치다. 아버지와는 많이 다투기도 했고 의견 충돌도 많았다. 처음에는 듣기 싫었고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돌아보면 모두 맞는 말씀이었다. 가끔 이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계획이었고 그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지유진 코치를 만난 건 행운이다. 지유진 코치가 없었더라면 지금도 골프를 우울하게 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만큼 나에게 골프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시선을 갖게 해주신 분이다. 어떻게 연습하고 어떻게 골프에 접근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골프에 대한 생각이 이전보다 훨씬 밝아진 것 지유진 코치 덕분이다. 두 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김해림은 없었을 것이다.”
-박성현이 떠난 뒤 2017년 KLPGA 판도를 예상하면?
“또 다른 강력한 경쟁자가 나올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다. 그렇기에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절대 만만한 선수가 없다.”
-겨울훈련 계획은?
“드라이브샷 거리를 10야드 정도 늘리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퍼트 훈련에 더 집중할 생각이다. 또 그린적중률은 좋은 편인데, 퍼트가 안 돼 성적이 나지 않았던 적이 많다. 지난 시즌 경기를 보면 퍼트가 좋았을 때 성적도 같이 좋았다. 올 겨울에는 퍼트에 대한 연구를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그것만 해결되면 올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목표가 있다면?
“빨리 피는 꽃보다 천천히 오랫동안 꽃을 피우고 싶다. 조급함을 버리고 배우는 자세로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지난 12월 초 더퀸즈 때 신지애 언니와 처음으로 깊은 얘기를 해본 적이 있다. 그 때 굉장히 멋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골프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랐고, 더 크게 생각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도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
● 김해림
▲1989년 9월8일
▲2007년 KLPGA 입회
▲2011년 KLPGA 드림투어 상금랭킹 1위
▲2015년 KLPGA 정규투어 상금랭킹 6위(4억1787만821원)
▲2016년 KLPGA 정규투어 교촌허니레이디스오픈, KB금융스타챔피언십 우승, 상금랭킹 6위(6억1850만6879원)
▲2016년 4개 투어 대항전 더퀸즈 KLPGA 대표
▲2013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 가입(1억 원 이상 기부자)